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나다 노부시게 (문단 편집) === 이름 === 유명(幼名 유소년기 때 이름)은 벤마루(弁丸/お弁丸, 辯丸)[* 인도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지혜·음악의 여신인 변재천(辯才天, Sarasvati: 사라스바티)에서 따온 듯하다. 사라스바티는 강가와 함께 비슈누의 아내였는데 비슈누가 그녀들을 모두 거느릴 수 없자 라크슈미만을 남겨 두고 강가는 시르바에게, 사라스바티는 브라마(범천:梵天)에게 주었다고 하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통칭은 겐지로(源二郎(源次郎))로, 전부 읽으면 사나다 겐지로 노부시게. 형인 노부유키의 통칭이 겐자부로(源三郎)이기 때문에 실은 차남이 아니라 장남이었다는 설도 있다. 드라마 [[사나다마루(드라마)|사나다마루]]에서는 사나다가문은 장남이 언제나 요절했기에, 셋째에게 붙이는 겐자부로라는 이름을 장남에게 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하고 이에 노부유키에게 주었고, 노부유키가 죽지 않고, 둘째 노부시게가 태어나자, 넷째 아들의 이름인 겐시로가아닌, 차남에게 주는 이름 그대로 겐지로를 주었다고 묘사하였다. 본명은 노부시게(信繁)[* 이 이름은 다케다 신겐의 동생인 [[다케다 노부시게]](武田信繁)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문무를 겸비한 능력 있는 인물로 신겐을 보좌했지만 우에스기 켄신과의 카와나카지마 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에는 가신은 주군의 이름에서 글자를 따와서 자식의 이름에게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지만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전에 자칭했던 적이 없기 때문에 후세의 가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 그 유래는 '유키(幸)'의 경우 사나다 가의 돌림자 급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이의 없이 받아 들여지고 있지만 '무라(村)'의 경우는 누나인 [[무라마츠도노]]에서 따왔다는 설, 요도 [[무라마사]][* [[도쿠가와]] 가문을 저주하는 무라마사처럼 사나다 부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골칫거리였던 것을 빗댄 것]에서 따왔다는 설, 아들 카타쿠라 모리노부(사나다 다이하치/사나다 모리노부(真田守信, 1612 ~ 1670)의 주군이었던 센다이 4대 번주 다테 츠네무라(伊達綱村, 1659 ~ 1719)에서 따왔다는 설 등으로 나뉜다. 다만 유키무라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기록된 문헌인 강담(講談) 소설 <난바전기(難波戦記)>[* 현재는 옛날 [[오사카]]를 지칭할 때는 [[나니와]]로 읽지만, 당시에는 '난바 센키'로 읽었다. 그리고 지금도 오사카의 별칭으로 난바라고 부른다.]가 오사카 전투 60년이 지난 1672년에 나왔고, 다테 가 가신에게 시집 간 딸인 오샤부가 만든 가묘에도 '유키무라'라고 적혀 있는 등 그 출현 시기가 빠르기 때문에 생존 할때도 쓰이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도 있다. <난바 전기>에서는 오사카 입성시 개명했다고 하는데[* [[사나다마루(드라마)|사나다마루]]에서는 이 설을 따랐다], 실제 역사에서는 오사카 입성 후에도 노부시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에도 시대에는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대항하고, 특히나 아들인 노부시게는 이에야스의 목숨을 빼앗을 뻔한 적도 있어서 반역자 취급이었는데, 그래도 서민들 사이에는 영웅으로 인기가 있어 후대의 강담과 소설의 창작자들이 에도 막부의 검열을 피해 본명인 노부시게를 바꿔서 유키무라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그의 영웅담을 다룬 강담 기록 <난바 전기>는 에도 막부에 의해 금서가 되어 서민들 사이에서는 몰래 인기가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현대 매체에서도, 심지어 [[NHK 대하드라마]] 같은 꽤 고증에 신경쓴다는 사극에서도 노부시게는 그냥 말년에 유키무라라고 개명했다는 설정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위키들에서는 유키무라 보단 노부시게로 표제어를 삼아야 한다는 논리에 반발해서 키배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다보니 일본에서는 그가 꼭 이름을 유키무라로 개명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는데 그냥 죽어라 노부시게만 무조건 옳다면서 이것만 쓰려고 환장한 인간들이 있다고 까는 경우도 가끔 있다.(...) 특히 일본어 [[언사이클로피디아]]가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편집전쟁]]을 이런 식으로 깐다.[[http://ansaikuropedia.org/wiki/%E7%9C%9F%E7%94%B0%E4%BF%A1%E7%B9%81#.E3.82.A6.E3.82.A3.E3.82.AD.E3.83.9A.E3.83.87.E3.82.A3.E3.82.A2.E3.81.A7.E3.80.90.E5.B9.B8.E6.9D.91.E3.80.91|원문]] 취소선은 원문 그대로 옮긴 것이다.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지만 그의 본명은 노부시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현재는 유키무라라고 불리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번거롭고 길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생략하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유키무라가 더 멋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노부시게라니...왠지 지저분하고 아재 같기도 하고...-- 여기서도 노부시게 쓰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을까. > >그의 자손들도 사람들이 "사나다 유키무라의 자손입니까?"라고 물으면 기꺼이 조상의 이야기를 한 마디 해 주는데, "사나다 노부시게의 자손입니까?"라고 물으면 무시당한다고 한다. >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키무라(幸村)라도 좋잖아?"라고 생각하고 있고, 교과서나 참고서에도 사나다 노부시게라고 실려 있는 것은 본 적이 없다.--뭐, 역사 오타쿠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보면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 >'''[[피꺼솟|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위키피디아에 있다]]!!''' > >그곳에서 '유키무라'라고 글을 올리면 어딘지 모르게 우글우글--아는 체하는 주방장--역사를 잘 아는 집필자들이 모여들어 편집전이 벌어진다. > >지금은 다소 진정되었지만, 이전에는 분쟁 끝에 '사나다 노부시게'와 '사나다 유키무라'가 2개의 페이지로 나누어져 있던 시기도 있다. 급기야는 '시게노 노부시게'니 '도요토미 노부시게'니 하는 소리도 못 들어본 듯한 이름으로 제목이 고쳐지는가 하면 편집 전투의 불똥이 다른 역사상 인물의 페이지에까지 미치는 등, 어처구니가 없었다. > >상식 있는 언사이클로피디아의 편집자 제군은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에 말려드는 일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부디 조심해 주기 바란다. > >'''틀리더라도 위키피디아에 '유키무라'라고 쓰지 않도록.''' > >솔직히 '노부시게'라는 이름도 좀 수상해. 물론 '유키무라'라는 이름의 처음 출처는 본인이 죽은 지 50년이 넘은 1672년 간행된 베스트셀러 군기 이야기 '난바전기'로 보이지만, 유키무라라는 이름인지는 어원을 포함해서 알 수 없다. 그런데 말이야 '노부시게' 라고 하는 이름도 알고 보면 말이야. 앞에서 말한 대로, 마사유키가 모시고 있던 타케다 신겐의 동생 노부시게와 같은 이름이 되지만, 당시의 매너에서는 가신들이 마음대로 주군의 근친 이름을 통째로 베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만약 같은 이름이 되면 가신이 꺼려 개명하는 것이 상례였다. 생각해 보자. 주군이나 그 근친의 이름에서 한 자 빌리는 거, 흔히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경우에는 이름 자체를 그대로 베낀다고. [[wwwww]]이놈들은 진짜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이야? > >어쨌거나 그 시대의 기록이라는 것이 유키무라가 주군과 도망쳤다든가, 아니면 도쿠가와 너구리가 유키무라에게 죽임을 당하고 막부가 일 년 동안 [[카게무샤]]로 속였다가 일 년 후에 죽은 것으로 해 버렸다든가 하는 소문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이 사람의 이름도 결국은 그렇게 확정할 수 없을 것 같은 풍설 아니던가, 그렇지 않나? 이 자칭 역사 마니아 형씨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